작가 안시형(평론)

즈음 갤러리 관장 송재진

안시형 "어머니前上展"

레디메이드 작가,
오브제 스토리텔러.

조각가인 줄 알았더니, 시인이었네
시인인 줄 알았더니, 예술가였네

온갖 사물들이
다 어머니시네
깨진 유리병 안에도, 사금파리 곁에도, 녹슨 병 뚜껑 위에도
어머니가 계시네

작가는 말합니다
사물 너머의 이야기, 진실을 말하고 싶었다고.

독립 큐레이터 류병학은 말합니다.
뒤샹 이래, 안시형의 레디메이드는 事物(사물)이 아니라 事緣(사연)이라고.
그것이 서구 레디메이드와의 차별점이라고.

가정의 달, 어버이의 날
즈음 갤러리에서 각자의 어머니를
작가의 레디메이드 거울 속에서 바라보실 것을 권합니다.

좋은 시간 되세요!

미술평론가 류병학

어머님前上展

안시형의 ‘어머님전상전’은 작가가 ‘어머님께 바치는 전시회’라고 할 수 있다. 
안시형은 뒤샹(Marcel Duchamp)의 ‘레디-메이드(ready-made)’ 이후 가장 
급진적인 작가이다. 마르셀 뒤샹의 대표적인 ‘레디-메이드’인 
<샘(Fountain)>(1917)은 작가가 아무런 신체적 노동을 하지 않고 공장에서
대량생산된 남자 소변기를 단지 전시장으로 옮겨놓고 ‘작품’으로 제시한 작업이다. 

그런데 어떤 점에서 안시형 작가의 작품들이 뒤샹의 ‘레디-메이드’ 이후 가장 
급진적인 작품이라고 말하는 것일까? 

이번 갤러리 즈음에 전시된 안시형의 작품들은 흔히 일상생활에서 볼 수 있는 
오브제들이다. 카네이션, 벼루, 종, 담배갑, 참기름병, 꽃잎, 장난감, 나무뿌리,
핸드폰, 레코드판, 씨앗, 도자기 잔, 서적, 숟가락, 판피린, 수석, 빛바랜 사진 등
이 그것이다. 만약 안시형이 일상의 오브제를 작품으로 전시했다면, 그는 뒤샹의
아류가 될 것이다. 하지만 안시형은 뒤샹의 ‘레디-메이드’에 사연, 즉 텍스트를
첨부해 놓았다. 

사람들에게 ‘현대미술’에 대해 물어보면 십중팔구 ‘잘 모른다’고 대답한다. 
그리고 따라오는 답변이 ‘현대미술은 어렵다’는 것이다. 안시형의 작품은 
가장 난해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의 작품은 가장 친절한 작품이기도 하다.
만약 안시형이 ‘벼루’나 ‘나무뿌리’ 그리고 ‘소설책’ 등 오브제들만 작품으로 
전시했다면, 관객은 그의 작품을 난해한 작품으로 간주할 것이다. 
그러나 그는 오브제들과 텍스트(비하인드 스토리)를 함께 전시함으로써 
친절한 작품으로 치환했다. 따라서 그의 ‘사연’ 시리즈는 가장 난해하면서도 
동시에 가장 친절한 작품이 되는 셈이다.

안시형의 ‘사연’ 시리즈는 공장에서 대량생산된 오브제들이 단순한 소비품에 
지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소유하고 있는 관객 각자에게 의미 있는
것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한다. 대량생산품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상품들이다.
그런데 누구나 소유하고 있는 것, 즉 누구나 같은 것을 가지고 있지만, 그것은 
우리 각자에게 다른 것이 된다. 왜냐하면 그것은 우리 각자의 사연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안시형의 작품은 우리에게 각자 가지고 있는 사라져가는
오브제들에 대하여 기억하게 만든다. 안시형은 관객인 우리에게 묻는다. 

‘여러분이 소유하고 있는 오브제에는 어떤 사연이 있나요?’

안시형의 '어머님전상展'을 보고

즈음 갤러리 관장 송재진

생애가 골목인 사람이 있다.
어깨와 어깨가 부딪치는, 좁고 굽은 길을 
걸어가고 있는 사람
모퉁이 돌 때에도 그림자가 꼬리처럼
따라붙는, 불빛 새어나오는 쪽창마다 
실루엣으로 스쳐가는 사람
생애가 大路인 사람은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사람의 생애는 보이지 않는
사람들끼리의 생애일 뿐이다.

생활이 예술인 사람이 있다.
지혜로운 일도, 감각적인 일도, 용기있는 
일도 아니다.
가로등의 반대편으로 달아나기만 하는
그림자지만 놓칠 일이 없듯이.
천천히 걷는 사람의 뒷모습을 보며 고개를
끄덕여주는 사람들이 있다.
걸음의 일기장을 넘겨보는 이들이 있다.

저기 걸어간다, 훗날 한 권의 책이 될 사람!
(김천정(김용선), 삼육대 아트엔디자인학과 교수, 화가의 글)

현대미술가 안시형

어떤 이들에게 작업은 관념이다. 전위다. 
재미다. 의도다.
그러나, 안시형에겐 길이다.
일상 속에서 발견하는 예술이 아니라 예술이
발견하는 일상이다.
일상은 각자의 길이 아니랴.

예술은 공감이다.
공감은 관념이나 전위나 재미나 의도만으로
비롯되지 않는다.
뒷모습을 보일 줄 아는 사람, 한참이나
뒷모습을 바라보게 하는 사람, 보이지 않게
된 뒤에도 잔상을 남길 줄 아는 사람, 그래서
한 동안 그 자리에 서있게 하는 사람...
생애가 골목인 사람만이 공감을 준다.

레디메이드. 오브제. 텍스트. 엑션....이 모든
개념들은 사람으로 수렴된다.
생애가 골목인 사람에겐 이 모든 개념들이
'미더스의 손'을 거친 파편들이다.
결코 빛나지 않는 金이다.
값없는 金이다.

고개를 끄덕여줄 줄 아는 사람들, 걸음의
일기장을 넘겨볼 줄 아는 사람들만이
발견하는 광맥일 따름이다.

-2021년 5월21일 작품 전시를 마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