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전시

Pack,  Se Sang  
"박세상의 하늘 창고/ 고독하기"

전시기간 : 2024. 5. 10(금) ~ 5. 19(일)
    

회화 

초대의 글

 노마드의 삶에서 확인한 재부재(在不在)의 예술관


아트랩 즈음 대표 송재진

  재부재(在不在), 즉 있고 없음이다. 있는 듯하나 없고, 없는 듯하나 있다. 박세상의 현재 그림에 대한 아픈 감상이다. 수도승이 소지공양(燒指供養) 하듯, 비장미를 간직한 작업들이 현재의 그림들인 것이다. 그림들이 스스로를 던져 한 그림을 만들어 내고 있다. 결핍의 극화인지, 리싸이클링(Recycling)의 극치인지 모를 퍼포먼스(performance)가 정지화면처럼 클로즈업된다.

  화가는 ‘오래된 미래’인 기작들을 ‘가까운 미래’로 환치하듯 바탕칠을 한다. 소멸(해체)과 탄생(생성)을 동시적으로 구현하기 위한 사전 조율에 망설임이 없다. 물질로 되돌린 캔버스를 커터칼로 조각낸다.-조각들을 사다리꼴로 만든 것은 빈틈없이 메꾸기 위한 경험의 지혜다.-하나하나 다 다르게 자른다. 해체된 조각들은 새로운 캔버스 위에 빈틈없이 메꾸어져 생성의 의미로 되살아난다. 마티에르(material)에서 텍스츄어(texture)로 다시 마티에르로 되돌아오는 자연의 순환마냥. 물감을 올리고, 뜯어내고, 오리고 붙이는 지난한 과정들. 「가파도 보리밭」은 이렇게 생명을 얻었다. 집들을 부숴 새집을 만든 셈이다. 그림 속 집(하늘창고, 화가 자신)은 자신을 낮추는 순응의 자연관을, 형식 면에서는 색면 회화라는 추상의지를 도모하고 있다. 

  “변화에서 가장 힘든 것은 새로운 것을 생각해내는 것이 아니라, 이전에 갖고 있던 틀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존 메이너드 캐인스(John Maynard Keynes, 1883~1946 영국의 경제학자)
 박세상의 현재 그림들이 새로운 것인지, 아니면 기존의 틀에서 벗어난 것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한가지 단서는 화가로서의 삶을 살게 해 준 것에 대한 보답을 화가가 늘 생각해왔다는 점이다. 화가로 살아왔던 한 인간이 세상에게 표할 사례, 그것은 곧 ‘비조(飛鳥)’는 ‘불탁적(不濁跡)’이듯 자신의 흔적을 최소화하겠다는 각성이다. 지금껏 생산해낸 작품들이 ‘흔적’이라면, 지금의 작업들은 이를 최소한으로 압축하려는 화가의 성찰인 것이다. 화가의 ‘고독하기’에 닿아있는 사유인 것이다. 

  화가는 두상(자소상)과 함께 인체조각상 5개를 만들었다. 영락없이 브론즈로 속을 만한 두상은 여름이 되면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피부가 말랑해진다. 화가는 쓰레기를 남기지 않을 명분으로 무려 8여 년간에 걸쳐 수행하듯 캔버스천 조각들을 천연접착제인 아교로 덩어리를 불렸다. 돌덩이처럼 단단해진 괴체 위에 형상을 조탁하고 그라인드로 갈고 청동색을 입혔다. 두상은 전시회 때마다 화가의 아바타(avatar)마냥 공간을 점한다. 

  박세상은 한 때 대구에서 인기 있는 구상작가로 전성기를 구가했다. 그럴 적에도 마음의 한켠에는 자신이 가닿고 싶은 예술 세상이 따로 꿈틀댔다. 구상화로 사랑을 받았지만, 이는 생활을 위한 그림일 뿐이라는 자조감이 주변을 맴돌았다. 작품 속에 녹아든 비구상 요소(분위기)는 그런 결핍의 정서가 노출된 것이리라. 발표만 않았을 뿐 줄곧 그려왔던 마음의 그림들. 구상이니 비구상이니 하는, 이런 분리가 의미가 있을까만 자신을 규정 지운 애호가들의 편견에 선긋는 일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길을 잃는다는 것은 곧 길을 알게 된다는 것’이라는 아프리카 속담처럼 박세상은 길을 버렸고, 다시 길을 얻었다. 마침내 자신의 이면을 온전히 노출한 전시를 펼친 뒤, 소통의 가능성을 확인하곤 대구를 떠났다. 화가는 남해와 제주에 이르는 노마드(nomad)의 길 위에서 자신이 오래도록 병행했던 작업이 시대의 흐름과 궤를 같이했음을 깨달았다. 무엇을 그려야 한다는 것은 강박관념일 뿐이다. 내면이 떠밀어내는 일상의 순수, 무색무취한 감정의 한순간을 담아내면 그뿐인 게다. 또 하나, 노마드의 본능은 축적보다 압축에 있다. 


화력 profile

* 초대 개인전 23회 
대구 1991(한성갤러리), ‘92(두빛갤러리), ’93(민갤러리), ‘95(봉성갤러러), ‘96(동원  화랑), ’98(동원화랑), ‘99(송아당화랑), 2000(송아당화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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