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으로부터 배달되는 구축의 언어
켜켜이 쌓은 물감의 두께가 시간과 깊이이다. ‘풍경 속에서 생명의 기운을 발견하는 것’과 ‘대상보다는 대상의 속성을 탐구하는 것’이 화두인 화가. 홍경표는 바다로부터 변화와 생명의 기운을 얻고, 그 바다를 무의식에 갈무리하는 화가다. 클레의 말처럼, ‘보이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감각의 원천을 바다로 새긴다. 익숙한 형태의 외연들은 거친 붓질과 두터운 마티에르로 덮어버리고, 내재되어 있던 본래의 색과 형을 다시금 조합하는 것. 이것이 심층에서부터 표층으로 배달되는 홍경표식 이미지즘(imagism)이 아닐까.
홍경표에게서 물감, 곧 색은 피동성 물질이 아닌 능동성을 지닌 물성의 존재이다. 그러므로 그림은 화가만의 결과물이 아니라, 질료 또한 능동성을 조력해준 합작품이다. 홍경표의 이런 인식은 세계에 대한 주관적 편집이면서도 사물을 대하는 겸손함이다. 이런 마음가짐에서는 교감 없는 형태와 색들은 모두 허상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심성과 물성의 합의체로의 질료, 내면의 전령으로서의 색을 다시금 구축할 수밖에 없다. 걷어내도 될 만큼의 두터운 물감층이야말로 바로 그런 합의의 정신일 터다. 마티에르의 두터움은 다시 쌓아 가는 의식이며, 동시에 색이라는 물성에 대한 존중인 것이다. 물은 생명의 근원이다. 그 근원으로의 회귀 방법 또한 구축의 묘를 살리는 일이다. 그림에는 리듬이 있어야 한다. 굵고 가늠, 빠름과 느림, 짙거나 옅거나 하는 조화와 부조화를 넘나드는 리듬. 이렇게 구축된 리듬이야말로 화가만의 회귀 비법일 터다.
죽변항. 화가의 삶과 꿈이 정박된 곳이다. 홍경표의 대부분의 바다 그림은 죽변의 표정이자 몸짓이다. 바다와 항구가 자신의 삶과 육신에 기인한다면, 죽변의 하늘은 꿈과 이상의 영역이다. 그래서인지 화면에서 가장 넓게 자리하는 것이 하늘일 때가 많다. 시선을 압도하는 고체화된 구름덩이는 무겁다 못해 쏟아져 내릴 것만 같다. 하늘은 때때로 풍경의 전부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육지는 하늘의 연기(演技)를 위한 무대 장치, 혹은 엑스트라처럼 배역된 곶과 등대, 건물과 지붕들이 점경인 냥 배치된다. 그러나 이 육지라는 터치야말로 구름을 조율하는 실존의 세계가 아니랴. 이처럼 화가가 연출하는 세계는 즉흥의 서사가 아닌, 숙성과 발효를 거친 아포리즘 세계다. 여행 중에 포착된 찰라의 감정이 아닌, 경험이 내장된 관조의 산물인 것이다.
홍경표의 시선은, 그러나 바다에만 고정되어 있지 않다. 기하 선상의 현란한 빛이 유혹하는 내륙에도 초점이 맞춰진다. 화가가 응시한 도시는 흐느적거리면서도, 작열하는 태양마냥 꿈틀대는 모습이다. 빌딩과 사람들은 질량인 듯 허상인 듯 산화 직전의 응축된 파도처럼 긴장감을 토한다. 도시는 무엇에도 비견할 수 없을 만큼 강렬한 색의 바다, 추상의 바다다. 도시의 표정이 곧 바다의 표정인 셈이다. 여행객이 된 화가는 이번에는 자신이 찰라의 감정, 즉흥의 서사를 써내려갔는지도 모른다. 응시한 두 개의 세상, 죽변 바닷가의 알록달록한 원색의 지붕들이 화음이라면, 도시의 색과 형은 다름과 차이의 변주라고 할까. 화음이건, 변주이건 화가는 캔버스 위의 악보를 능숙하게 지휘할 따름이다.
홍경표의 회화는, 자신의 철학을 캔버스 위에 해방시켜 나온 여정의 다름이 아니다. 55회의 개인전에서 보듯, 삶 자체가 곧 회화인 것이다. 그래서일까, 만남이 늘 설레는 화가로 홍경표를 꼽는데 주저함이 없다.
아트랩즈음 대표 송재진
홍경표(洪景杓 Hong kyeng-pyo)
.홍익대학교미술대학원 석사(회화전공)
.개인전 55회.
.초대전 및 단체전 500회.
.키아프, BAMA, Kart부산국제아트페어,경주아트페어, 대구아트페어 등 30여회 아트페어 참여
.대한민국미술대전 특선 및 입선 3회. .경북미술대전 최우수상 및 특선 3회. .신라미술대전 최우수상 및 특선.
.경북미술대전 초대작가상 수상
.작품소장처: 호주시드니총영사관, 포항시립미술관, 경북도청, 삼성전자,
고려제약, 한전프라자, 울진군청,